김응룡(68) 삼성 라이온즈 사장 감독 유니폼을 벗고 CEO 자리에 앉은 지 만 5년이 돼 간다.(2004년 12월 부임) 김 사장은 경기인 출신 첫 전문 경영인이란 사명감을 안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프로야구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뒤로했기에 야구계뿐 아니라 세간의 화제를 뿌렸다. 어느덧 유니폼보다 정장차림이 더 어울리게 된 김응룡 사장의 야구얘기를 들어 본다.
프로가 번창해야 아마도 살아나
김응룡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관중 500만 명을 넘어선 사실을 매우 의미 있게 바라봤다. “관중이 많이 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김 사장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야구계엔 저변확대와 인프라 확충 등 당면과제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 사장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답변을 내리고 있다. “선수들이 질 높은 플레이를 펼쳐 팬들을 끌어 모으면 다른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 김 사장은 야구단이 모기업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해서 운영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위해선 평균관중 2만 명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구단의 독립채산이 이뤄지기 위해선 세제 등 법규 문제가 따르지만 최소한 평균관중 2만 명이 되면 독자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아마추어 야구의 활성화에 대한 시각도 여기서 출발한다. “무턱대고 야구장 많이 만든다고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축구장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렇다고 국내 프로축구 인기가 대단하냐”고 되물었다. 결국 프로야구의 인기상승이 물 흐르듯 아마추어로 내려가 야구 인구를 증가시키고, 어린이들에게도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로에서 붐이 일어나는 것이 우선이고, 물질적 지원은 그 다음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선배’답게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도 숨김없이 드러냈다. “선수들이 야구만 생각할 수 있도록 대우를 잘해줘야 한다. 그래야 어린 아이들도 그 모습을 꿈꾸며 방망이를 잡을 것 아니냐.” CEO로서 선수들에게 충분히 베풀어주지 못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린 아이들은 영원한 꿈
김응룡 사장은 오래 전부터 현장을 떠나면 자신이 처음 야구를 배운 부산에 내려가 손자 같은 어린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쳐 주는 것이 꿈이었다. “사실 감독을 그만 두면 그럴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다면 꼭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김 사장은 비록 자신과의 약속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어린 후배들과 함께 하고 있다. 모교인 개성고(옛 부산상고) 후배들에게 수십 년째 야구장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것은 물론 지난해부턴 충북 진천의 초·중학생 120여 명으로 구성된 ‘진천 꾸러기 야구단’에 금전적, 물질적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가 야구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나. 야구 때문에 성공했으니 후배들에게 많이 베풀어야 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지, 뭐.”
김응룡과 선동렬
ⓒ OSEN |
야구계에서는 지난 해부터 ‘선동렬 괴담’이 나돌았다. 선동렬 삼성 감독이 올해 5년 계약이 끝나면 삼성을 떠난다는 소문이었다. 이 루머는 시간이 흐를수록 구체화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김응룡과 선동렬’의 각별한 관계를 간과한 큰 착오가 있었다.
김응룡 사장은 7월20일 선동렬 감독과의 재계약을 전격 발표했다. 하루 전인 19일 김 사장이 선 감독을 따로 만나 재계약에 합의한 것이다. 이 때 김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선 감독은 나보다 먼저 삼성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선 감독은 이렇게 화답했다. “사장님에게 내가 먼저 등을 돌릴 수 없다.” 둘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다.
김 사장은 해태 감독 시절 에이스 선동렬과 함께 6차례의 우승을 이뤄냈다. 그리고 삼성으로 건너 와 사장과 감독으로 조합을 이뤄 2차례 정상에 섰다. 모두 8차례 우승을 합작한 최고의 ‘콤비’인 셈이다.
김응룡 사장은 선동렬 감독과의 관계에 대해 “덕을 많이 본 사람”이라고 했다. 선 감독이 옆에 있어준 덕분에 여러 가지 면에서 이득을 봤다는 얘기다. “나이 차가 많이 나지만 배울 점이 많다. 생각이 깊고 의리가 있는 친구다.”
김 사장과 선 감독이 처음 만난 게 1985년. 햇수로 24년 됐다. 감독과 선수에서 이젠 든든한 동반자가 된 둘의 사이에서 나이 차를 떠나 ‘남자들만의 세상’이 그려졌다.
감독시절이 그리워
김응룡 사장은 현장을 떠난 지 만 5년이 돼 가지만 아직도 그라운드에서 흙먼지를 마시던 그 시절이 못내 그리운 모양이다. “감독으로 있을 땐 왜 그렇게 사장 하는 게 마음에 안 들던지 말야. 근데 막상 이 자리에 앉아보니 감독 하기가 훨씬 편하더군.” 김 사장은 감독할 때보다 요즘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감독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못하면 책임지면 되지만 사장은 손발 다 묶인 채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사장이 된 뒤 삭일 곳에 없어 혼자 끙끙 앓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야구장에도 잘 가지 않는다. 워낙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다. 인터뷰가 있었던 9월15일 삼성은 4위 진입의 기로에서 한화와 맞붙었다. 하지만 이날도 김 사장은 야구장에 가지 않았다. “특히 시즌 막판 순위경쟁이 치열해지면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하지. 이땐 야구장에 앉아 있으면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아예 안가고 말지.”
김 사장은 몇해전 큰 수술을 받았다. 체력에 관해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지만 세월엔 장사 없다고 요즘엔 조금만 무리를 해도 몸에 금방 이상신호가 온다. 그렇게 좋아하던 등산도 얼마 전부터 끊었다. “이상하게도 감독을 그만두고 나니까 몸이 슬슬 고장 나기 시작하더군.” “껄껄” 웃었지만 눈가에 회한이 묻어났다.
그렇다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을까? “마음이야 있지. 근데 나이 70 넘은 할아버지를 받아줄 구단이 있을까?” 김 사장은 반대편 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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